클라이밍 #1
클라이밍은 단순하게 올라가면 된다고 생각했던 내가 있었다.
고2 때, 수련회에서 암벽등반을 했었다. 안전장치를 다 하고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이다!"하고 부끄러운 대사를 외치고 내려오는 거였다. 나보다 운동 잘하는 친구들은 도중에 포기하고 내려갔는데, 나는 끝까지 올라가서 성공했었고 나만 성공했다는 기쁨에 저 부끄러운 대사도 큰 소리로 외쳤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클라이밍==암벽등반인 줄 알았고, 기분 좋게 남았던 추억이라 클라이밍을 한 번 배워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클라이밍을 배우고 가장 놀란 점은 팔 힘이 강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더 중요한 건 하체였다는 점이다. 내가 추억했던 암벽등반이야 무작정 올라가면 되는 일이라 팔 힘만 충분하다면 괜찮았지만 클라이밍은 달랐다. 물론 팔 힘도 중요하지만 팔 힘만으로 벽면에 붙어서 자기 몸을 버티는 건 한계가 있다. 때문에 더 신경 써야 하는 건, 내 몸의 무게중심이고 무게중심을 잘 잡으려면 엉덩이에 힘을 주고 자세를 잡아야 한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이 진짜 고수들은 필요한 때만 힘을 주듯이 클라이밍도 팔 힘을 적게 쓸수록 고수인 거다.
일주일에 강습 2번씩 해서 한 달 이용권이 25만 원을 냈는데 주변에 가르쳐줄 지인이 없다면 배우는 게 좋을 거다. 만약 내가 혼자 무작정 시작했다면 내가 하는 건 클라이밍이 아니라 매미 흉내내기였을 거다. 벽에 딱 달라붙어서 신음소리만 매앰매앰~~
강습을 시작할 때는 4명이었다. 바로 다음 주에 3명이 됐고 3주가 지났을 때는 나 혼자 남았고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는 아니다. 흐름상 너무 자연스럽게 나와버렸다. 마지막 주에 강습생은 나 혼자 남고 다 그만뒀다.
이때 1:1 강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3~4명이었을 때는 가르쳐야 할 것도 있고 사람 수도 있으니 내가 어거지로 진행해도 강사님이 적당히 넘기셨는데, 나 혼자 남으니 전문 케어에 들어갔다. 내가 하는 걸 보더니 강사님은
"아니요! 아니요! 다 틀렸어요 다 틀렸어!"
라고 말했다. 지난 3주가 박살 났던 순간이다. 강사님은 내가 팔 힘으로 어거지 클라이밍을 하고 있다고 알려주셨다.
하체, 엉덩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내가 하체에 힘주는 법을 모른다고 이것부터 고쳐야 한다고 스쿼트를 시켰고 갑자기 클라이밍이 PT로 바뀌었다. 그래서 일주일 동안은 클라이밍은 하지도 못하고 PT만 받았다. 본래 불만을 잘 품지 않고 그러려니 하는 성격이라서 가만히 PT만 받았다. 그리고 1주 후에 강사님의 깊은 뜻을 알 수 있었다. 계속 강조하던 하체에 힘주는 법을 터득하고 클라이밍을 하니 훨씬 편하게 몸을 움직일 수 있었고 그제야 나는 클라이밍이 재밌어졌다. 한 달을 하고서야 클라이밍이 재밌다고 생각했다. 사실 강습이 끝나서 이제 그만 가도 된다고 생각이 있어서 재밌다고 느꼈을 수도 있다. 퇴근길에 들리기에는 좀 멀다 여기.
강원이랑 정호도 데리고 몇 번 갔다. 역시 뭘 하든 친구랑 같이 하는 게 더 재밌다. 올라가던 중에 실패하고 떨어질 때 원래 그런 스포츠니까 누가 웃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괜스레 혼자 머쓱한데 친구랑 같이 있으면 떨어지는 것도 웃기다. 그리고 손과 발을 어디다가 두면서 동선을 짜야 코스를 성공할지 같이 얘기하는 것도 즐겁고 잘하는 사람들 하는 거 보면서 같이 호들갑 떠는 것도 재밌었다.
정호는 안 올 거 같으니 강원이랑 또 하러 가야겠다. 김정호 돼지새끼.